'금융권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이하 지배구조 TF)'가 2년 전
KT&G 사외이사 선임 과정을 논의하고 스터디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를 활용돼 2인의 사외이사를 선임한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들이 금융권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대형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대형 상장사에는 금융지주도 포함된다.
지배구조TF는 금융지주 대표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직접 선임하게 하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이 검토 과정에서
KT&G 사례가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사회가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지만 상법 개정으로 초래된 거버넌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목소리도 제기된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지배구조 TF는
KT&G 주총 사례를 케이스로 금융지주 거버넌스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학계와 법조계 인사들과 함께 지난해 말 지배구조 TF를 조직하고 금융권 지배구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KT&G 주총 사례가 거론된 건 집중투표제 도입에 따른 거버넌스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한 차원으로 전해진다.
2024년 3월 정기주총에서
KT&G는 신규 이사 2명을 선임할 예정이었다. 당시 이사 후보는 방경만 대표 후보와 임민규·손동환 사외이사 후보 등 3명이었다. 방경만 대표 후보와 임민규 사외이사 후보는 이사회 추천을 받았고 손동환 사외이사는 기업은행 등 일반주주 지지를 얻었다. 당시
KT&G는 행동주의 펀드 FCP 등 요구에 따라 집중투표 방식으로 신규 이사를 선임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사내외 이사를 가리지 않고 한 안건에 모든 후보를 올린 뒤 일괄적으로 투표에 부쳐 최종 득표순 차례로 선임을 확정한다. 이사 2명을 신규 선임하는 경우 후보 3명 중 상위 득표자 2명이 뽑히는 식이다.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하기로 했는데 이사회가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별도 안건으로 올리면 이는 직접 투표를 잠탈하는 행위로 간주돼 강행규범 위반 혐의로 이어질 수 있다.
투표 결과 방경만 대표 후보는 50.9% 표를 받아 1위를 기록했고 손동환 후보가 34.3%를 획득해 2위에 오르면서 두 후보가 신규 이사로 선임됐다. 임민규 후보(14.8%)는 이사 선임이 무산됐다. 다행인 점은 방경만 대표 후보가 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KT&G는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6명으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었는데 방경만 대표가 선임되지 않았다면 대표 없이 사외이사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뻔한 상황이었다.
KT&G 대표는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를 주총 결의를 통해 선임하기 때문에 절차 상 주총 결의를 받지 않으면 대표를 선출할 수 없다.
KT&G는 향후 주주행동에 의해 대표 없는 이사회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감안해 지난해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 집중투표에 의해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대표 사장과 그 외 이사를 별개의 조로 구분해 선임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새롭게 기재하고 주총 결의를 받았다.
지배구조 TF는 이사회 대신 주총에서 대표를 선임하는 안에 주목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모든 금융지주가 포함된다. 집중투표제는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로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주주가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갖게 하는 제도다. 일반주주의 이사 선임 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금융지주 역시
KT&G와 같이 이사 선임 과정에서 주주행동으로 자칫 대표 선임이 무산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금융지주 역시 사외이사 위주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기 때문에 대표가 선임되지 않으면 대표 없는 이사회를 꾸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거버넌스 TF 관계자는 "거버넌스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주주의 직접 선출이라는 성격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TF가 주총에서 대표를 직접 선임케 하는 안을 실제 추진하게 되면 금융사지배구조법(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한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모든 금융지주에 일괄적으로 의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권 관계자는 "주총에서 대표를 직접 선임케 하는 것이 기업 거버넌스 자체에도 도움이 되고 투명성을 높일 수 있으며 주주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회의론도 일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주주 목소리가 이사회에 잘 반영되지 않는 경우 주주의 대표 직접 선출이 해결책이 될 순 있지만 주주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사회의 고유 기능을 자칫 형해화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배구조 TF 측은 현재로선 다양한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하고 있을 뿐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 TF는 올 3월 전까지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올 8월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돌입하는
KB금융이 해당 개선방안의 첫 적용 사례가 될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