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주주총회 시즌에서는 다양한 신규 사외이사 후보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중에는 이사회 활동과 무관한 커리어를 쌓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 후보로 발탁된 이들도 적지 않다. theBoard는 국내 상장사 이사회 내 특이 이력의 사외이사를 소개하고 그 선임 배경에 자리잡은 거버넌스 구조를 분석해 본다.
특정 오너가 지배력을 쥔 기업에서 이사 선임 권한은 오너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오너의 개인적 인연이 이사회 진입 통로로 작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계룡건설산업이 이승찬 회장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전직 프로골퍼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기 이전부터 상장사 이사회에는 오너의 학교 동문부터 오너의 주치의까지 오너 측과 개인적 인연을 맺은 이들이 사외이사로 등판하는 사례가 이어져왔다.
개인 최대주주가 이사회 경영 최전선에 서 있는 경우는 흔하다. 이사회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후보를 선임했더라도 주총에서 최대주주가 반대하는 경우 정족수를 채울 수 없어 최대주주가 이사 선임 권한을 쥐고 있다시피 한 경우가 많다. 한국앤컴퍼니는 신규 이사 후보 선임 시 회장 개인 면담을 진행하고 그 평가를 통해 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오너 지분이 큰 기업 대부분이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
문제는 최대주주가 이사 선임을 주도한 결과가 이사회 독립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 상장사 미창석유공업은 오너 일가 영향력 아래 최대주주 유재순 대표의 고등학교 동문을 사외이사로 기용하고 있고 코스닥 상장사 메가스터디 역시 같은 구조 하에 최대주주 손주은 회장 대학 동문을 꾸준히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 오너 인연을 통해 이사회에 등판한 경우 이사회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CJ에는 과거 이재현 회장의 주치의로 알려진 김연수 서울대 의대 교수가 사외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서 활동한 바 있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사회 등판 이후 1년여 만에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이사직을 내려놨다. 시장에서는 이 회장과의 인연이 오히려 사외이사 활동을 제한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김 교수는 이사회 소속 기간 테이블에 올라온 모든 안건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다. 김연수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23년 CJ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 교수는 CJ 이재현 회장의 주치의 교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2024년 말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이사직을 내려놓았다. [이미지=서울대학교 홈페이지] 한 코스피 상장사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역시 사람인지라 이사회 활동 중 향후 재선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인사권을 쥔 이가 오너라고 한다면 그 오너를 견제 감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서 "사외이사는 태생적으로 외부인이라는 한계가 있어 경영 정보를 자세히 알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오너 측 의견에 동조하거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언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너 인연으로 이사회에 진입한 경우 거수기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직 골프선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내세운 계룡건설 측은 이 후보가 골프장 운영 사업에 조언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회사 이사회 안건이 모두 골프장 관련 내용만으로 채워질 리 없다.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 이사회 역할을 소화하는 데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시장에서 집중투표제에 대한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너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사만으로 이사회를 꾸리면 최대주주에 유리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일반주주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이사를 이사회에 투입함으로써 논의의 다양성을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는 정관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배제할 수 없게 돼 제도 도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집중투표제 실효성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된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이사회 멤버들이 기존 오너 측 인사라고 가정했을 때 집중투표로 일반주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사가 들어오면 기존 이사가 그 이사를 껄끄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사회 결의를 위한 정족수도 있는데 한 명의 이사가 이사회 전체 결정을 바꾸거나 논의 분위기를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사회 평가에 대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이사회 구성원 간 평가를 실시한 뒤 그 평가 내용을 이사 보수를 책정하거나 재선임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를 두고 사외이사 사이에선 '우리나라 정서 상 자연스럽지 않다'거나 '점수를 박하게 받을 정도로 이사회 활동이 엉망인 이를 이사회에 영입하는 것에 책임을 지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선 주주들이 자기 주식에 비례해 이사회 선임 권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분 20%를 가진 주주는 이사회 자리의 5분의 1 만큼의 자리를 추천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대주주 영향력을 억제할 수 없다면 사외이사 스스로가 회사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면서도 "지금의 사외이사 제도 역시 각계 얘기를 듣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