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페인트공업 오너 3세 경영 체제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주주총회에서 이사인 주주의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의결권 행사가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다른 주주 동의 여부가 중요해지면서 사실상 오너 3세 신임 성격을 띄게 됐다. 사명 변경과 이사회 개편 작업을 목전에 둔 삼화페인트가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통과시켜 새로 이사회가 출범할 수 있을지 여부에 시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화페인트는 내달 26일 경기도 안산시 소재 안산공장 강당에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날 정기주총에서는 재무제표 승인 안건을 비롯해 지난해 상법 개정에 따른 정관 변경 안건, 이사 선임 안건, 이사 및 감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등이 다뤄질 전망이다. 이번 주총은 지난해 말 김장연 회장 별세 이후 고 김 회장의 장녀 김현정 대표 주도로 처음으로 개최되는 주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시장에서는 내달 주총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통과 여부가 주목받는 분위기다. 지난해 대법원은 주주인 이사가 주총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주주인 이사의 해당 안건 의결권 행사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해당 안건을 주총 표결에 부칠 때 발행주식 전체에서 주주인 이사가 보유한 주식을 제외한 뒤 정족수를 산정해야 한다.
관건은 주주인 이사가 지금까지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통과를 주도해 온 경우다. 주주인 이사 의결권 행사 없이는 주총 해당 안건 통과 자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사 보수한도는 정관에 구체적 내용을 기재하고 있지 않는 한 매년 주총 결의를 받아야 한다.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해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할 근거가 없어진다. 이사회 운영이 어려워져 경영이 마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삼화페인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까지만 해도 주총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통과는 고 김 회장이 주도했다. 상법 상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은 보통결의 사항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25%) 이상 찬성과 주총 출석 주식 중 과반수 이상 찬성이 모두 필요하다. 고 김 회장이 직접 보유하고 있었던 지분은 25.8% 수준으로 그의 의결권 행사만으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무리가 없었다.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표결에 부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작년 정기주총에서 고 김 회장 의결권이 제한됐다고 가정하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안건이 부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주식 총수의 42.2% 찬성과 출석 주식 99.6% 찬성으로 통과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발행주식 총수 19.4% 찬성과 출석 주식 99.0% 찬성으로 보통결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올해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지난해 고 김 회장 별세 이후 그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량은 장녀 김현정 사장이 상속받았다. 현재 김 대표의 지분은 25.8%로 1년 전 고 김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 대표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주주이자 이사로 분류돼 올해 정기주총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표결 과정에서 25.8%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 김 회장의 누나인 김귀연 씨가 주총에 직접 참여해 자기 지분 1.5%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 안건 통과에 힘을 실어준다고 하더라도 전체 구도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관건은 고 김 회장의 부친 창업주 김복규 전 회장과 공동 창업에 나선 윤희중 전 회장의 두 자녀 윤석재 윤석천 씨의 지원 여부다. 윤석재 윤석천 씨는 현재 각각 지분 6.9%와 5.5% 갖고 있다. 이들이 지원에 나설 경우 정족수 확보에 문제는 없다.
다만 윤씨 형제는 그간 주총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삼화페인트 오너 3세 체제 출범 이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윤씨 형제의 의결권 행사 여부가 오너 3세 체제 신임투표 성격을 띄는 셈이다. 윤씨 형제의 지원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김 대표 측은 일반주주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일반주주가 가진 지분은 40% 수준이다. 일반주주 상당수는 지금까지 주총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자사주를 우호 주주로 분류되는 일본 추코쿠마린페인트 측에 매도하고 잔여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를 발행한 건 주주 반감을 살 여지가 있어 부담이다.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 지배력 향상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자사주 의무 소각 원칙을 명시한 상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삼화페인트 이사회는 정기주총에 사명을 삼화페인트에서 SP삼화로 바꾸는 안건을 비롯해 김 대표와 함께 이사회를 꾸려나갈 신규 이사들을 선임하는 안건을 올린 상태다. 오너 3세 경영인 등판과 함께 회사 간판과 이사회 멤버를 쇄신하는 모양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통과 여부가 오너십의 지배력을 확인받는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이사 보수한도는 40억원으로 1년 전과 같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