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사들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부결 리스크를 사실상 비껴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주주인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다수 코스피 상장사에서 안건 부결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실제 정기주총에서는 대부분 원안이 통과됐다. 전자투표 확대와 의결권 위임 확보, 안건 구조 조정 등 기업들의 사전 대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총을 앞두고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부결 가능성이 거론된 코스피 상장사는 30곳에 달했다. 지난해 주총 결과를 기준으로 주주인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가정할 경우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추려낸 것이다. △태양금속공업 △
서연 △
대한제강 △
SK디스커버리 △
DS단석 △
비에이치 △
한국앤컴퍼니 △F&F홀딩스 △동방 △
엠씨넥스 △KC그린홀딩스 등이다.
최대주주가 등기이사(사내이사·기타비상무이사 등)인 곳으로 지분은 많게는 56.49%(풀무원), 적게는 8.11%(신성이엔지)였다. 주주인 이사의 의결권이 배제될 경우 안건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 주총에서는 대부분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통과됐다. 전자투표로 일반주주 참여를 독려하고 의결권 위임을 적극 시도한 결과다. 의결권 위임에는 수억원이 투입됐다고 전해진다.
대부분 기업들이 이사 보수한도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줄인 것도 효과적이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부결 가능성이 거론된 코스피 상장사 30곳 중 이사 보수한도를 늘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사 보수한도를 그대로 유지한 곳은 27곳, 삭감한 곳은 총 4곳으로 집계됐다.
엠씨넥스와
덴티움,
신성이엔지,
풀무원 등이다. 한도 금액 감소폭이 가장 컸던 곳은 전년 한도에서 50%(50억원)를 줄인
신성이엔지였다.
이는 코스닥 시장에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부결 사례가 속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에서는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자금 상황이 열악해 이사회 단일 이벤트에 수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못해 일반주주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 정관에 구체적 금액을 적시하지 않는 이상 이사진 보수 지급이 어렵다.
코스피 시장에서도 부결된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덴티움 주총에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제안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과 이사회가 상정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함께 올랐다. 이사회가 부친 안건은 보수한도를 지난해 18억원에서 15억원으로 낮추는 안이었는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얼라인 안은 사내외이사 보수한도를 각각 8억원과 4억원으로 설정하고 사내이사 성과보수를 15억원으로 한정했다.
주총 직전 주주인 이사가 사임해 표결에 참여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한진중공업홀딩스의 경우 지난달 25일 조남호 회장이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이사직을 내려놨다. 지난해 말 기준 조 회장의 지분은 46.5%. 그 이튿날 열린 주총에선 이사회가 부친 이사 보수한도 13억원 승인 안건이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전체 발행주식 중 63.2%가 찬성한 결과인데 조 회장 의결권 행사 없이는 안건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사내외이사 보수한도를 별도 안건으로 부친 곳도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대성산업은 사내이사 보수 한도와 사외이사·기타비상무이사 보수한도를 별도 안건으로 올렸다. 주주인 이사 의결권 미행사로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부결될 수 있는 리스크를 분산한 것. 사내이사 보수 한도는 20억원이고 사외이사 및 기타비상무이사 보수 한도는 10억원이다. 지난해 이사 보수한도는 30억원으로 사실상 변화가 없는 셈이다.
디와이덕양의 경우 최대주주(지분 20.04%) 윤성희 대표이사 부회장의 보수한도를 별도 안건으로 올렸다. 대성산업과 마찬가지로 윤 부회장 의결권 미행사로 전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부결될 경우를 감안했다는 평가다. 해당 두 보수한도 안건 표결에는 일부 반대표도 나왔지만 정족수를 확보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윤 부회장 특수관계인인 하란수 명예회장과 이국진 회장 보수는 별도 책정하지 않았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 관련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꾸준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고민한 결과 이사 보수한도 금액이 주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 설정됐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라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행동 캠페인을 벌여 안건을 부결시킨 사례가 관측되고 있는 만큼 향후 지속적인 주주 설득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