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 계열사 지원이 개정 상법 시행 이후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면서 계열사 지원 과정에서 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뚜렷한 명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실 계열사 지원의 문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최근 HDC그룹이 비상장 계열사 아이파크영창 기업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결정한 배경에도 이 변화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6일 아이파크영창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업 부진이 장기화하며 현금창출력이 약화됐고 협력업체 대금 등 상거래 채무 부담이 커지면서 유동성 압박이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향후 실사를 거쳐 계속가치와 청산가치를 비교한 뒤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법원이 회사 경영과 채무 조정 일체를 관리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계열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차원의 판단 결과로 보고 있다.
IPARK현대산업개발과
HDC랩스 등 그룹 계열사가 아이파크영창에 자금을 꾸준히 지원해 왔지만 상법 개정으로 주주 설득이 가능한 사업 청사진과 회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HDC 산하에는 IPARK현산과 등 4개 상장사와 29개 비상장사가 있다. HDC 최대주주는 지분 33.7%을 가진 정몽규 회장이다.
아이파크영창은 수년째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연간 순손실 규모는 최소 12억원에서 최대 109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누적 결손금은 929억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현금 창출력이 크게 둔화된 상태에서 단기 유동성 부담까지 겹치자 그룹 계열사 지원 없이는 회생절차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사 안팎 관계자들 설명이다.

아이파크영창 이사회는 현재 김병철 대표와 유위동 이사와 도기탁 기타비상무이사 등 3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도기탁 이사의 경우 현재 모회사 HDC의 사내이사(전무)이기도 하다.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룹 입장을 고려했다는 뜻이다. 아이파크영창은 HDC가 지난해 말 기준 지분 93.4%를 보유,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적 부진이 모회사 성적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HDC 경영진이 아이파크영창 문제를 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HDC뿐 아니라 IPARK현산과
HDC랩스 등 주요 계열사 유동성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건 추가 지원에 따르는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이파크영창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가 열리진 않았지만 안건을 이사회에 올리는 것 자체가 개정 상법을 고려했을 때 부담이라는 의견도 있다.
HDC 관계자는 "현 시점 아이파크영창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HDC 및 계열사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 "HDC는 회생절차를 수행하는 데 성실히 협조하고 그 과정에서 대주주로서 이행해야 할 법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HDC는 2006년 아이파크영창의 모태격인 영창악기개발 지분 57.3%를 563억원에 인수하고 유상증자 등을 통해 꾸준히 아이파크영창에 자금을 투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회생절차 신청을 상법 개정 효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HDC 입장에선 당연히 자회사 사정을 고려했겠지만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외이사 중심으로 명시적 지원 반대 의견이 나와야 상법 개정 여파라는 분석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장 반응을 우려해 지원 여부를 과거와 비교해 엄격하게 봤다는 것 자체가 개정 상법 효과"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사 분석 케이스가 계속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 충실의무 범위가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면서 경영진이 부실 계열사 지원을 결정할 때 필연적으로 주주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롯데쇼핑이 자회사 롯데컬처웍스 신종자본증권 발행 관련 자금보충 약정을 결의하는 과정에서도 시장에선
롯데쇼핑 이사회 결정 과정에 주목한 바 있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현재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소액주주들이 증자 결정에 참여한 일부 사외이사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키도 한 상황.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상법 개정 후 일부 주주가 경영 결정에 대해 권리 훼손 이슈를 들어 소송을 거는 경우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 "소송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사회 멤버들의 결정이 보수적으로 이뤄질 개연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