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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이사회 존재 이유는 더 나은 퍼포먼스"

어피니티 총괄 출신 김정인 SKC 사외이사 "갈등 혹은 자산이 되는 논쟁은 종이 한 장 차이"

이돈섭 기자

2026-04-16 15:50:08

체질을 바꾸고 있는 기업의 이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업 재편과 실적 부진, 주가 하락이 동시에 맞물린 상황에서 이사회가 내려야 하는 판단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 사이 대대적인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인 SKC는 이 질문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최근 경기도 과천시 소재 유클릭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인 SKC 사외이사(사진)은 이사회는 정답을 찾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의사결정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사회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하고 고심 끝 내린 결정에 따른 책임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사외이사는 그러면서 '기업 이사회에 책임은 과도하게 지우면서 권한과 환경은 제한하는 지금의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기 소신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김 사외이사는 다양한 기업을 거친 경영 전문가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맥킨지앤컴퍼니에 합류해 파트너로도 활동했다. 이어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의 부사장을 거쳐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글로벌 오퍼레이션 총괄을 역임했다. 경영 데이터 분석 플랫폼 하이퍼라운지를 설립해 대표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그가 사장으로 재직 중인 소프트웨어 기업 유클릭과 하이퍼라운지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 "이사회에 정답은 없다, 궁극적 목적은 퍼포먼스"

풍부한 경영 경험만큼 그의 이사회 경험도 다채롭다. 특히 어피니티 총괄로 근무하던 시절 숫자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장시간 난상토론을 겪었던 이사회 경험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간 사외이사 영입 제안은 여러번 받았지만 국내 이사회에서는 적극적 역할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고사해왔다. 그러던 중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시급했던 SKC 측 제안을 받고 그간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SKC는 최근 수년 간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2023년 화학사업 핵심 자회사 SK피유코어의 폴리우레탄 사업을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완전 자회사 SK엔펄스를 비롯해 SKPIC글로벌과 해외 법인, 종속회사를 연달아 정리했다. 현재는 1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 유리기판 사업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경영 상 오판도 있었고 타이밍도 나빴지만 조심스럽게 최저점은 지났다는 게 이사회 진단이다.


김 사외이사가 정의하는 이사회는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조직의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도출하는 조직'이다.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가 주주 전체에게 이로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조직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애초에 정해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금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 확신에 차 결정을 내렸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결정의 여파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김 사외이사는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해관계 충돌 속에서 이뤄진다"면서 "모든 주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데 결과 책임까지 요구한다면 결국 아무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정답이 존재한다면 집단적 의사결정 조직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결정을 내리고 문제가 따르면 해결하면 된다.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유상증자 안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사회는 그간 수차례 모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끝에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고 만약 잡음이 따르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 사외이사는 "이사회 논쟁이 있을 때 이것을 갈등으로 보느냐 자산으로 보느냐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라면서 "다양한 배경의 이사들이 자기 의견을 개진해 합의를 보는 과정을 회사는 하나의 자산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사회 실질적 기능 향상은 다양성 확보가 시작"

김 사외이사가 2023년 SKC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이 적극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 사외이사는 이사회 합류 때부터 현재까지 이사회 산하 미래전략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위원회가 주요 경영 현안을 검토하는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초기 사업 계획과 진행 및 결과 보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법 상 보고의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굳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 이후 이사회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 사외이사는 "사업 계획에 반영돼 있지 않은 투자를 심의할 경우 이사회가 나서야 하는데 사업 내용과 방향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이사회에서 사업 관련 디테일을 다 얘기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이사회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 변화였다"고 회고했다. 지금의 이사회 운영 절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투명하고 철저하다고 자부한다.

그의 직언은 그룹을 향하기도 한다. SK그룹은 매년 늦가을 계열사 이사진이 모이는 디렉터스 서밋을 개최하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면서 이사회가 한국인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모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사외이사는 "이사회 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먼저 다양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자리에 있던 그룹의 임직원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사회 관련 규제에 대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임기가 2년 안팎으로 정해져 있는 임원이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가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외이사 최초 임기 역시 2~3년 정도로 정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외이사 임기 및 겸직 제한을 완화할 경우 부작용이야 생기겠지만 '도둑이 생긴다고 해서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진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사외이사는 현재 SKC가 겪고 있는 시간이 향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김 사외이사는 "이사회가 처음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버티고 나갈 것인가를 얘기했다면 지금은 회사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로 대화의 규모가 조금씩 커가고 있다"면서 "극악환 환경 속에서 회사와 임직원들이 자생할 수 있는 체질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은 지금의 이 시간을 지나면서 얻은 중요한 성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