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제도가 외형상 안착했지만 실제 운영은 여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건 자료는 사전에 제공받더라도 검토 시간은 충분치 않다는 응답이 많았고 상법 개정으로 책임은 커졌지만 보수와 교육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만도 확인됐다.
사외이사 제도가 우리나라 기업에 처음 도입된지 30년에 가까워졌다. 현대그룹이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1996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고 1998년 관련 제도가 마련돼 시행에 들어갔다.
최근 일련의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제도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형식과 실질의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직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서베이에서도 이 인식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theBoard는 현 이사회 운영 제도 관련 사외이사 인식 지형을 확인하기 위해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현직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진행했다. 서베이
대상은 과거 최소 1개 이상 기업 이사회 활동 경험이 있는 현직 사외이사 21명이었다. 서베이 참여자 중 71.4%(15명)는 남성이었으며 61.9%(13명)은 60대였다. 학계 인사가 52.4%(11명)으로 가장 많았고 법조계 인사가 28.6%(6명)으로 뒤를 이었다.
서베이 문항은 이사회 운영과 관련한 28개 주·객관식 질문으로 구성했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6년)에 대한 적합성과 사외이사 겸직 제한(최대 2곳) 등에 대한 인식을 물었고 안건 사전 자료 제공 수준과 검토 기간 소위원회 운영 실
효성 사외이사 선임 절차의 적정성, 지원 조직 및 교육 프로그램 수준 등도 함께 점검했다. 아울러 상법 개정 이후 개선이 필요한 제도적 과제 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응답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형식과 실질 간 괴리다. 이사회 안건 검토 시기와 그 만족도를 물었는데 응답자 86.2%(16명)이 사전 자료 제공은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반면 검토 기간은 대부분 1주일을 넘지 않았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으로 나왔다. 이사회 개최 1~2일 검토 기간이 주어진다고 응답한 이사도 19.0%(4명)였다. 개선이 시급한 제도로 '안건·자료 사전공개 강화'를 꼽은 이가 38.1%(8명)이었다.
안건 검토 시간이 짧으면 이사회가 토론보다 의결 절차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응답자의 42.9%(9명)가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논의 분위기 미숙(35.3%) △이사 참여도 부족(23.5%) △전문성 부족 및 검토 자료 미흡(각 17.6%) 등이 꼽혔다. 한 서베이 참여자는 "제대로 된 사람을 이사로 들이지 않아 문제가 발생해도 나서는 이가 없다"고 응답했다.
한 금융회사 사외이사는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한 안건이 올라오면 수시간 만에 그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반면 비전문 분야 안건에 대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사회 운영의 핵심은 자기 분야 안건이 아닌 분야에 대해 충분한 시간과 자료를 제공하는지 여부인데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는 이사회 개최 직전에 자료를 집중 제공해 불만을 사는 경향이 종종 있다"고 소개했다.
일련의 상법 개정으로 이사 책임은 커진 데 반해 보수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도 확인됐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범위가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되면서 사외이사들의 책임 부담은 한층 커졌다. 서베이에서도 응답자의 76.2%(16명)가 해당 개정 내용을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았다. 충실의무 범위 확대가 이사회 활동을 좌우한다는 인식에서다.
하지만 책임이 커진 만큼 보수가 만족스럽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61.9%(13명)는 보수 수준이 책임 대비 낮다고 응답했다. 서베이 응답자의 절반 이상(57.1%)이 지난해 연 7000만원 이하 보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보수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책임 확대에 따른 보수 인상’이 42.9%로 가장 많았고 '주식보상 확대(33.3%)' '성과연동 강화(23.8%)' 등이 뒤를 이었다.
사외이사 교육 프로그램 보완에 대한 목소리도 컸다. 참가자 중 61.9%(13명)가 현재 교육 프로그램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법률 규제 리스크 대응에 대한 분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7.1%(12명)로 가장 높았고 경영 승계·보상 등 지배구조 이슈가 42.9%(9명)로 뒤를 이었다. 현재 사외이사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여부를 제어하고 있는 규제 체계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사외이사들은 정부 주도의 제도 개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자의 61.9%(13명)이 향후 이사회 운영은 규제와 자율 간 균형 조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28.6%가 시장 자율성 확대와 시장 규율 중심이 우선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 운영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사회 본질적 기능을 대체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