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주총회 시즌 상당수 사외이사들이 새로 선임됐고 재선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사회에 자리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 선임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순 없다. 그간 소속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이사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포함해 이사회 활동 이력이 부진했거나 그간 주주가치를 저해하는 안건에 동조한 이력이 있는 경우라도 최대주주 지원에 힘입어 선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theBoard가 지난해 4월 초부터 올 3월 말까지 최근 1년 간 주요 종합자산운용사 운용규모 상위 15곳의 의결권 행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특정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가장 많은 운용사 반대표를 받은 상장사는
삼성전자와
한국항공우주였다. 해당 두 안건은
삼성전자 허은녕 사외이사(
사진) 재선임 안건과
한국항공우주 조진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으로 각각 이번 분석
대상 15개 자산운용사 중 5개 자산운용사의 반대표를 받았다.
2022년 11월
삼성전자 이사회에 합류한 허 사외이사의 경우 지난 3월 주총에서 재선임을 통한 임기 3년 확대를 노리고 있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서울대 자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허 교수는 현재 한국에너지법연구소 원장과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 등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허 사외이사가 '에너지 자원과 환경, 기술경제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경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허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은 KB자산운용을 비롯해 우리, 교보악사, 흥국, 하나자산운용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 3월 정기주총 당시 지분 0.2%(약 1202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던 KB자산운용은 재선임 안건 반대 이유에 대해 '
삼성전자와 중요한 거래 및 이해관계가 있는 법인의 상근임직원이라는 점에서 독립적 사외이사직을 수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봤다. 서울대와
삼성전자 간 산학협력 등을 문제삼은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삼성전자가 허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을 때 역시 국민연금을 비롯한 복수의 자산운용사가 유사한 이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다. 하지만 오너 일가와 그 우호 주주 등 지원에 힘입어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에도 성공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 3월
삼성전자의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혁규 서울대 교수에 대해서도 허 사외이사와 유사한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키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의 조진수 사외이사의 경우 과거
한국항공우주 측과 맺어온 밀접한 관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 사외이사는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2년 간
한국항공우주 산학위원회 위원장으로 근무했는데,
한국항공우주 대표가 해당 위원회 위원장을 위촉하는 점이 문제가 됐다. 신한자산운용을 비롯한 5개 운용사는 조 사외이사가 해당 위원장으로 재직했을 당시
한국항공우주가 포럼을 주도한 데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봤다.
현재 조 사외이사는
한국항공우주소년단 부총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항공우주소년단 총재는
한국항공우주의 강구영 대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우리, 삼성, 흥국자산운용 등은 조 사외이사 후보와
한국항공우주 측과의 관계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복수의 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 사외이사는 지난 3월 사외이사 재선임에 성공, 현재 재직 중이다.
올 3월
한화오션 이사회에 새롭게 합류한 안완기 사외이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무원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해 온 안 사외이사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으로 근무했는데, 회장 재임기간 소속 기관이
한화오션 포함 복수의
한화그룹 계열사가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문제였다. 안 전 회장이
한화그룹 측과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사외이사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코스닥 상장사
브이티의 이세정 사외이사는 그간 낮은 이사회 출석률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22년
브이티 이사회에 합류한 이 사외이사는 지난해 말까지 매년 평균 40%의 출석률을 기록했다. 2023년 출석률은 6%에 불과했다. 상당수 자산운용사는 이사회 출석률을 일정 수준 미만일 경우 재선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토록 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3곳 이상 반대가 있었지만 이 사외이사는 재선임에 성공했다.
이수페타시스의 양승환 사외이사는 과거 의결권 행사가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자산운용사 3곳 이상의 반대표를 받았다. 지난해
이수페타시스가
제이오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는데 일반주주 반발과 감독당국 제동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양 사외이사는
제이오 경영권 인수를 위샂 5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안건 등에 찬성했는데, 주주권을 희석하는 사안에 동조한 것이 부적절한 처사였다고 복수의 운용사들이 판단했다.
올 3월 주총 시즌에서 재선임에 잡음이 인 사내이사들도 많았다.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대표적이다. 서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분석
대상 15개 자산운용사 중 무려 9곳의 반대를 받았다.
셀트리온이 서 회장 개인 지분이 높은 일부 계열사에 부당 이익을 제공한 것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나 과징금 처분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에 대한 책임 소지를 물은 것이다.
기업 의결권 분석기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법 제도 상으로는 주주가치를 저해하는 사내·외이사를 뽑을 수 없게 한 장치가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고 하지만, 실제 경영 현장에서 이 장치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곰곰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최대주주 등의 지원 등에 힘입어 다수의 기관이 반대하는 사외이사를 결국 선임하고야 마는 행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제제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