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집권여당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장기적으로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까지 이뤄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만큼 해당 정책의 무게감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합병이나 분할 등 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지배주주의 의결권처럼 기능해 왔다.
시장이 자사주를 대규모로 보유한 기업, 그 중에서도 지주사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지주사는 특성상 기업가치가 지배구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 지주사를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이 확산돼 주주가치가 제고될 것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지주사 28곳, 자사주 5% 이상 보유…TY홀딩스·대웅·롯데지주 ‘상위권’
7일 iM증권과 Fn가이드 등에 따르면 5% 이상 자사주를 보유한 보유한 지주사는 총 28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증시에 상장된 지주사는 약 72곳으로 집계되는데 이들 중 약 40%가 자사주를 상당수 들고 있다는 뜻이다. 자사주는 회사가 본인이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해 보관하는 주식을 말한다.
자사주 5% 이상 보유기업 비중은 전체 상장사와 비교했을 때 지주사가 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상장사 중 자사주를 5% 이상 보유기업은 529곳으로 전체의 20% 정도인데 이 비중은 지주사의 절반 수준이다.
자사주를 특히 많이 보유한 지주사는 티와이홀딩스(이하 TY홀딩스)인 것으로 집계됐다. 태영그룹의 지주사인 TY홀딩스는 전체 발행 주식 수의 29.8%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들고 있다.
2위는
대웅으로 29.7%의 지분을 보유했다. 둘의 자사주 지분율 격차는 불과 0.1%p(포인트)에 그친다.
3위는
롯데지주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27.4%에 달한다.
SK와 노루홀딩스도 각각 24.8%, 22.9%를 기록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두 자릿수 자사주를 보유한 지주사는 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두산은 17.9%,
HDC는 17.1%,
케이씨(이하 KC)는 16%를 보유 중이다.
LS(15.1%)와
영원무역홀딩스(14%)를 포함해
하림지주,
삼양홀딩스,
쿠쿠홀딩스 등이 자사주를 12~13% 내외로 보유하고 있다.
KISCO홀딩스와
HD현대도 각각 10% 정도의 자사주를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은 지주사 등이 자사주를 어떻게 처분할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을 필두로 집권여당이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을 중장기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감소하면서 주당 가치가 상승, 주주가치가 제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벌써 대응에 나선 기업도 있다.
롯데지주다. 보유한 자사주 물량의 절반가량을 기존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런 계획에 따라
롯데지주가 롯데물산에 자사주 5%를 매각하면서 열흘 전까지만 해도 32.5%에 이르렀던 자사주가 27%대로 감소했다.
자사주 소각 등을 기대해 주가 변동성이 커진 기업도 있다. 노루홀딩스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크다는 내용의 증권사 리포트가 발간되자 이튿날 주가가 큰폭으로 상승하며 투자자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활용 ‘확대’, 소각 의무화 필요성 제기
이 대통령 등 정부가 자사주를 주목하는 배경은 지배주주의 지분 희석 없이 그룹 경영권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돼서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취득은 기업 이익을 주주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주주환원 수단으로 인식됐다”면서도 “그런데 국내 자사주 제도는 본래 취지와 달리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고 지적했다.
2011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 처분, 소각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완화했다. 2015년에는 회사가 구조 개편시 자사주를 신주 발행 대신 활용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그 결과 자사주 자체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기업들이 합병, 분할, 계열사 출자 등 구조를 개편할 때 지배주주가 우호 지분을 확보하거나 계열사로 지배력을 전이하는 용도 등으로 자사주를 활용했다. 기업이 자사주를 자유롭게 활용할 제도만 마련되고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에 대한 방지책은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됐다. 2023년 금융위원회가 자사주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연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자사주 제도개선 간담회가 열렸고 관련 공시 규제가 크게 강화했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총수의 5%를 넘으면 기업이 보유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 등을 공시하게 됐다.
그 결과 2024년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12조원을 넘어 전년 대비 156% 증가했다. 모두 137곳의 상장사가 자사주를 소각했는데 이는 2023년 대비 42.7%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것만으로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활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황현영 연구원은 “해당 제도 개선안이 나온 이후에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며 “자사주의 자의적 처분을 통한 지배권 강화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사례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 정책을 시행하기까지 수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보유분에 대한 소급입법 금지원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정부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대한민국 진짜성장을 위한 전략’을 발간하고 “상장사 자사주에 대한 원칙적 소각근거를 마련하고 기보유 자사주에 대해서는 합리적 규제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 여기에 대해 △충분한 유예기간 부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