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글로벌그룹이 올해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
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력 계열사의 수익성이 개선됐고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다만 순이익 급증의 절반 이상은 영업 호조가 아닌 환헤지 손실의 소멸에서 비롯됐다. 베어링아트를 제외한 4개사가 순현금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베어링아트의 단기 집중 차입금 구조만이 유일한 약점으로 꼽힌다.
◇영업이익은 올랐지만 순이익 급증의 절반은 '환헤지'
일진글로벌그룹의 공시
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이끈 핵심 동력은 주력 계열사들의 수익성 개선이다. 별도기준 일진글로벌은 2025년 매출 1조2225억원, 영업이익 2391억원, 영업이익률 19.6%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7.0%, 영업이익은 27.0% 늘었으며 영업이익률은 3.1%포인트 올랐다.
순이익 기준으로는 개선폭이 훨씬 가파르다. 일진글로벌의 당기순이익은 1370억원에서 2310억원으로 68.6% 급증했다. 순이익 급증을 영업 호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통화선도(환헤지) 관련 손실의 대규모 소멸이다. 일진글로벌의 통화선도 평가손실과 처분손실 합계가 2024년 1161억원에서 2025년 251억원으로 910억원 급감했다.
일진글로벌에 이어 두번째로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가 큰 베어링아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확인된다. 베어링아트 매출은 5659억원으로 6.4%, 영업이익은 764억원에서 810억원으로 6.1%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14.3%로 14%대를 유지했다. 순이익은 482억원에서 1264억원으로 2.6배 뛰었다.
베어링아트도 통화선도 관련 손실이 2024년 532억원에서 2025년 107억원으로 425억원 줄었다. 핵심 2개사 합산 1335억원의 손실이 사라진 셈이다.
◇2024년 '계엄 환율 쇼크'가 만든 헤지 손실
통화선도는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일진글로벌이 달러·유로 매출의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파생상품이다. 미래 시점에 외화를 특정 환율에 팔겠다고 은행과 약정하는 구조로 수출 대금을 미리 원화로 확정해 환율이 떨어져도 손실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반대 방향으로 환율이 움직일 때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약세) 계약 당시보다 높은 시장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었을 텐데 낮은 계약 환율에 묶여 있으니 기회손실이 발생하고 이것이 손익계산서에 평가손실로 반영된다. 만기에 실제 결제가 이뤄지면 처분손실로 확정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일진글로벌이 체결한 통화선도 계약은 달러화 6억2300만달러 규모였고 약정환율은 달러/원 1197~1350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달러/원 환율은 1470원대까지 급등했다.
계약에 묶인 환율(1197~1350원)과 시장환율(1470원) 사이의 괴리가 고스란히 평가손실(735억원)로 반영됐고 같은 해 만기 도래한 계약의 처분손실(426억원)도 쌓였다. 두 항목 합계 1161억원이 2024년 일진글로벌 순이익을 끌어내린 핵심 요인이었다.
이 손실은 단순한 회계상 평가손익에 그치지 않았다. 현금흐름표상 통화선도부채의 실제 현금 정산 규모도 2024년 6926억원에 달했다. 계약 당시 환율과 결제 시점 환율 사이의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했던 것이다.
2025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첫째, 손실 규모가 컸던 2024년 만기 계약들이 대부분 정산되면서 처분손실이 4억원으로 줄었다. 오히려 157억원의 통화선도처분이익이 발생했는데, 원화가 일부 구간에서 강세로 전환한 시점에 고환율로 약정된 계약이 유리하게 결제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 잔존 계약의 약정환율이 현실화됐다. 2025년 말 기준 미결제 통화선도 계약은 달러화 3억2700만달러, 유로화 2억6000만유로 규모다. 달러화 계약의 약정환율은 2026년 만기분이 1320.50~1443.20원, 2027년 만기분이 1350~1402원으로 2024년 계약(1197~1350원)보다 높게 설정돼 있다. 유로화 계약도 1602~1653원 수준이다.
시장환율과의 괴리가 좁아지면서 평가손실이 247억원으로 줄었다. 실제 현금 정산 규모도 4415억원으로 전년보다 2511억원 감소했고 이것이 OCF 급증(328억→2313억원)의 주된 동력이었다.
◇현금흐름 역시 개선세
수익성은 현금창출력으로도 확인된다. EBITDA(상각전영업이익, 영업이익+감가상각비) 기준으로 일진글로벌이 2679억원, 베어링아트은 102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OCF)은 일진글로벌이 2313억원, 베어링아트가 685억원, 일진베어링이 664억원이다.
벌어들인 현금이 투자로 이어지는 흐름도 나타난다. 일진글로벌은 2025년 단기투자자산으로 1700억원을 신규 편입했다. 일진베어링도 단기투자자산을 550억원에서 1100억원으로 두 배 늘렸다. 수익성 개선이 재무 여유로 직결된 구조다.
일진의 2025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41억원으로 2024년 -2억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당기순이익 1185억원에도 지분법이익(1267억원)을 차감하는 구조상 영업 현금창출력은 제한적이었다.
투자활동에서는 368억원이 순유입됐다. 단기금융상품 1550억원을 처분하고 860억원을 취득하는 과정, 종속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 153억원, 매도가능증권 처분 68억원 등이 유입에 기여했다. 반면 기계장치 취득(41억원), 건설중인자산 투자(48억원) 등 설비투자도 지속됐다.
재무활동은 연차배당금 지급 120억원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기말 현금은 전기 54억원에서 당기 444억원으로 390억원 급증했다. 단기금융상품을 대거 현금화한 영향이 크다.
재무건전성은 그룹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베어링아트를 제외한 4개사에 차입금이 없다. 일진글로벌의 현금성 자산(현금 1672억+단기투자자산 1700억)은 3372억원, 일진글로벌홀딩스는 3929억원, 일진베어링은 1478억원, 일진은 954억원으로 4개사 순현금 합계가 9733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도 일진글로벌홀딩스 2.0%, 일진 5.0%, 일진글로벌 19.3%, 일진베어링 24.5%로 낮은 수준이다.
베어링아트는 다른 결을 보인다. 단기차입금 3180억원이 유동부채에 집중돼 있어 부채비율이 108.6%로 그룹 내 유일하게 100%를 넘는다. 순차입금은 약 2629억원으로 EBITDA(1026억원) 대비 2.6배 수준이다. 영업이익(810억원)이 이자비용(117억원)의 6.9배로 이자부담이 큰 상황은 아니다. 다만 차입금이 단기에 쏠려 있는 만큼 유동성 관리에는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어링아트까지 포함한 주력계열사 5곳의 순현금 규모는 7104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