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총 시즌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 내용이 처음으로 전면 적용되는 무대라는 점에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반주주들은 주주행동 플랫폼 등을 통해 목소리를 모으고 있고 일부 주주 사이에선 관련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기도 했다. 실제 주총 시즌에 진입하면 주총 결의 효력을 둘러싼 가처분 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사회 논의 절차를 체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 두산 케이스 스터디, 과거 주주반대 이력
두산의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지분 7.7%(보통주 기준)을 갖고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어 올 주총에 상정될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 회장 외 김민철 유승우 등 대표들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주인 이사가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건 자기 보수 상한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주주인 이사의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에 대해 의결 정족수를 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은 상법 상 보통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과반수 찬성과 발행주식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두산 이사회 내 주주인 이사가 갖고 있는 지분은 도합 8.2% 정도다. 전체 발행주식에서 이를 제외한 91.8% 기준으로 해당 정족수를 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주총 문턱을 넘으려면 발행주식 전체의 23.0%의 찬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박 회장의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지분 32.4% 수준이기 때문에 주주인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더라도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민연금(9.5%)을 포함해 지분 5% 미만의 주주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 이사 보수한도 안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반주주 사이에서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고 실제 주총 시즌 가처분 소송도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대형 상장사의 경우 주총 이슈에 대한 준비가 잘 돼 있겠지만 오너가 있는 중견 상장사의 경우 주총 현장에서 상당한 잡음이 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산은 과거 주주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두산 이사회는 작년 3월 주총에 이사 보수한도를 150억원에서 280억원으로 올리는 안건을 상정했다. 한 운용사는 "직전연도 영업이익이 악화한 것에 비춰봤을 때 상향 정도가 사회통념상 과도하다"면서 "성과부진과 주주환원 동결을 감안했을 때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있다"며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난해
두산은 이사진에 총 259억원을 지급, 보수한도의 92.4%를 소진했다.
◇ 보수위 역할 강조…"논의 과정 체계화 우선 과제"
보수한도에 포함되는 급여와 성과급 외 주요 경영진에 RSU를 지급하고 있는 점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박정원 회장의 경우 지난해 주식 1만9152주를 수령했는데 RSU가 주총 통제 범위 밖에 있는 경제적 보상으로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대주주의 경우 어떤 성과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사외이사 역할이다. 경영진이 제시한 이사 보수한도 수치를 검토하고 그 내용을 주주에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독립성에 하자가 있는 경우 경영진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직 관료와 변호사, 교수로 구성돼 있는
두산 사외이사진은 이사회 산하에 보상위원회를 꾸리고 이사 보수한도 안건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대형 로펌 소속 기업 거버넌스 담당 변호사는 "올해 정기주총이 지난해 대법원 판결 내용을 처음 적용하는 자리인만큼 이사 보수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면서 "이사회 산하에 보상위가 이미 설치돼 있다면 그 기준과 논의 기록을 체계화하고 보상위가 없는 기업의 경우 경우 사외이사 중심으로 보상위부터 구성한 뒤 그 독립성을 확보해 나가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초점은 이사회 감시 체계 밖에 있는 미등기임원 오너의 보수 문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주주인 이사는 이사회와 주주 감시 체제 하에 있지만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주주의 경우 그 통제 장치 밖에 있다. 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오너가 이사회 바깥에 있다 보니 이사회가 형해화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이 꼽힌다. CJ 최대주주 이재현 회장은 CJ를 비롯해
CJ대한통운과
CJ ENM 등 주요 계열사 미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4년 한해 이 회장이
CJ에서 받은 보수만 156억원에 달한다.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하이트진로홀딩스 박문덕 회장,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 등도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대표적 기업 오너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