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102곳으로 지난해보다 10곳 늘었다. K-뷰티와 K-푸드, 방산, 증권·플랫폼 산업 성장세가 반영된 결과다. 굵직한 M&A도 판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기획에서는 2026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바탕으로 그룹별 재무 체력 변화, M&A와 신사업 전략, 그리고 지배구조 개편 흐름을 짚어본다.
일진글로벌그룹이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처음 편입됐지만, 핵심 계열사 이사회는 여전히 사내이사 중심으로 꾸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가 없어 사외이사 선임 의무는 없지만, 오너와 내부 임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는 향후 지배구조 측면의 점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창업주 고 이상일 전 회장이 베어링 국산화를 기반으로 그룹을 키운 뒤 2023년 별세하면서 현재는 장남인 이동섭 회장 중심의 2세 경영 체제가 자리잡았다. 이동섭 회장은 핵심 계열사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고 일부 임원들은 복수 계열사 이사회를 겸직하고 있어 그룹 전반의 의사결정이 오너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다.
◇베어링 국산화로 그룹 키운 창업주, 2023년 별세
일진글로벌그룹의 창업주 고 이상일 전 회장은 고려대 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근무하다 1973년 일진물산을 설립해 수출용 섬유제품을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베어링 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그룹의 토대를 쌓았다. 1978년에는 일진단조(현 일진베어링)를 설립해 단조 사업을, 한국블럭스위치(현 일진글로벌)를 설립해 컨테이너 부품 수출사업을 전개했다. 1986년에는 동아산업(현 일진)을 설립해 자동차 부품사업을 섀시 제조까지 확장했다.
일진이 2000년 3세대 휠베어링을 독자 개발하면서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뤘고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완성차 시장을 공략했다. 일진글로벌그룹에 따르면 미국 픽업트럭 10대 가운데 6대가 일진의 휠베어링을 장착하고 있으며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 벤츠, BMW, 마세라티, 테슬라 등 완성차기업이 일진의 휠베어링을 사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베어링아트를 설립해 산업용 베어링 시장에 진출했다. 철도용 엑슬 베어링, 트랜스미션 베어링, 로봇용 크로스롤러 베어링 등을 생산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상일 전 회장이 2023년 6월 12일 별세한 뒤 현재 그룹은 이 전 회장의 아들 이동섭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영동고등학교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 섐페인 캠퍼스에서 MBA를 취득했다.
삼성증권에 근무하다 2003년 일진글로벌에 입사해 재무·전략기획 실장, 미국 법인장 등 경력을 쌓았다. 그룹 내부에서 재무와 해외사업을 두루 거친 뒤 경영 전면에 나선 셈이다. 이 회장은 2024년 6월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일진글로벌 계열 이사회, 사내이사 일색
그룹 지주사 격인 주식회사 일진은 올해 초 이사회 구성을 바꿨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따르면 이경수 공동대표이사가 2026년 1월 9일 사임했고 후임으로는 송영수·박종철 공동대표이사가 취임했다. 현 이사회는 이동섭·송영수·박종철 공동대표이사 3인에 우상혁 사내이사, 임효진 감사로 구성된다. 임 감사는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장기 감사다.
일진글로벌도 이동섭·송영수 공동대표와 이윤주·이명수·김진덕·박중양 사내이사, 박덕순 감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베어링아트는 2024년 5월 취임한 유현욱 대표 아래 이명수·김진덕·박중양 사내이사가 이사회를 구성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명수·김진덕·박중양 3인이 일진글로벌과 베어링아트 이사회를 동시에 겸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진글로벌그룹이 사외이사를 두지 않은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한해 사외이사 선임 의무가 부과되는데 일진글로벌그룹 내에는 상장사가 없다. 비상장 중견그룹으로서 공시 의무도 최소화돼 있어 외부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다만 이는 경영 투명성 측면에서 과제로 꼽힌다. 이 회장이 핵심 계열사 이사회를 직접 장악하는 구조에서 독립적 감시·견제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최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된 만큼 향후에는 외부 견제 기능 강화 여부가 지배구조 측면의 과제로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