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와 이사회 간 접점이 늘어나면서 최대주주의 이사회 운영 방식도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도리코와 신한금융지주처럼 이사회가 투자자와 적극 소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오너 기업에서는 여전히 최대주주의 인식과 운영 철학이 이사회 독립성의 핵심 변수로 꼽히고 있다. 시장에서는 행동주의를 적대적
대상으로 보기보다 장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대화 상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신도리코 사외이사, 펀드 간 대화에 적극적
이사회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선 대표적 사례로는
신도리코가 꼽힌다. VIP자산운용은 2024년
신도리코 지분 5% 이상을 취득하고 이달 초 지분을 7%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주식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다. 업계에 따르면 VIP운용은
신도리코 측에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배분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VIP운용 측은 가치투자를 표방하고 있는 자산운용사이지만 최근 일부 상장사
대상으로 주주관여를 적극 강화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두 기업 간 소통 방식이다. VIP운용 측은
신도리코 경영진뿐 아니라 사외이사(감사위원)와도 꾸준히 의견을 교환하면서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회가 상정한 안건이 특별한 반대 의견 없이 대부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것 역시 사외이사 개개인들이 VIP운용 포함 주주들에 이사회 논의 내용을 적극 설명한 결과라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모든 의견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대표적 쟁점은
신도리코의 최근 일본 부동산 투자 안건이다. VIP운용 측은 일본 부동산 시장에 투자할 자금을 자사주 매입 소각에 활용해 주가를 부양할 것을 요구했고
신도리코 측은 일회성 이벤트를 만들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기업의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의견 차이는 여전하지만 아직 두 기업 간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진 않다.
소유분산 기업에서는 이사회 활동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신한금융지주는 팬데믹 시기 이후 줄곧 사외이사가 해외 NDR에 참여해 투자자와 경영진 간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외이사가 사재를 출연해 주식을 매입하기도 했다. 다만 뚜렷한 최대주주가 있는 오너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가 자율적으로 대외 활동을 전개하기가 쉽지 않아 사외이사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오너 기업에서 사외이사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오너의 이사회 운영 철학이 뚜렷하거나 사외이사의 개인 역량이 뛰어나야 한다"면서 "이사회 차원에서 기업 가치의 장기적 제고라는 공동의 목표를 먼저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도리코의 경우 우석형 회장과 그의 자녀 우지원 우승협 전무 등 오너 일가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미등기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 "주주는 기업 이해관계자 중 하나일 뿐"
시장 전문가들은 오너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와 제대로 된 대화에 나서기 위해선 펀드가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리고 있다는 의구심을 거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주식을 취득한 이상 보유 기간과 관계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행동주의 출현을 상시 변수로 인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여당이 소위 주가 누르기 방지법(상속증여세법·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소통을 외면하기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실제
영원무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관측된다.
영원무역을
대상으로 행동주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쿼드운용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자사주 매입 소각과 배당 확대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영원무역은 단기적 이벤트보다 중장기 투자와 사업 경쟁력 확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전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요구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장기 투자자로 남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 부담이다.
김지열 쿼드운용 이사는 "행동주의 펀드는 자본배분과 주주환원, 시장소통 측면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건 경영진이 잘하는 것이고 펀드는 시장 관점에서 자본배분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개 캠페인은 여러 차례 대화에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하면 펀드도 계속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명제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기업은 사회 속 다양한 이해관계자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주주는 그 중 하나인데 상법 개정 이후 시장에서 주주 권리가 부각되면서 다른 이해관계자를 압도하는 듯한 인상"이라면서 "기업에는 주주 외에도 거래처,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주 의견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은 이사회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경영 판단에 대한 사후 책임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업들은 이해관계자 간 이익 조정 과정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와 관련 정부·여당이 이사회 사전 검토를 의무화하면서 사실상 주주 편을 드는 건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 건 시장 내 건전한 논의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