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운영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로 ‘다양성’을 꼽았다. 다만 성별·연령·직군 안배에 치우친 기계적 다양성 강화는 형식적 운영을 되레 고착화할 수 있다며 전문성과 실질적 토론 역량을 함께 갖춘 인선이 우선이라는 시각을 내놨다.
7일 theBoard가 실시한 사외이사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내 다양성 확보에 대한 질문에 엇갈린 응답을 내놨다.
사외이사 선임 절차에서 우선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42.9%(9명)가 '다양성 확대(산업·성별·연령)'이라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42.9%(9명)가 이사회 및 산하 소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 원인(복수 응답)으로 △분위기 미숙(6명)과 △이사 참여도 부족(4명) 등을 지적, 이사회 구성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가 형식적인 이유는) 열정적으로 논의에 참여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들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며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선임하지 않는 것과 이사들의 연령대가 상향 평준화돼 있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사외이사는 이어 "결과적으로 문제가 발생해도 나서기 싫어하는 인사가 없다보니 (이사회 운영이 형식적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사회 다양성 규제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현행법 체계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특정 성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하게 했으며 금융회사의 경우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고려해 이사회를 꾸리도록 주문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체계에서는 이사진 연령과 전문성 등을 다양하게 구축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는 이사진 이력과 배경 편중 문제를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사외이사들의 인식이다. 응답자 중 한 여성 사외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기계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다양성 측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성별과 직군뿐 아니라 연령과 국적 등 측면에서 다양한 인재를 확보해 실질적 논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코스피 상장사 계룡건설산업의 경우 지난 정기주총에서 성별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유소연 전 프로골퍼를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을 들 수 있다. 시장에선 유 전 골퍼 기용으로 성별 다양성은 확보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거버넌스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전 골퍼는 최대주주 이승찬 회장과의 친분을 통해 이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필요한 자질로 전문성을 우선적 요건으로 꼽았다. 개선이 시급한 이사회 제도로 전문성 있는 이사 후보군 확대를 꼽은 응답자는 61.9%(13명)로 최대주주 영향력 축소 장치 28.6%(6명) 등 독립성을 강조하는 응답을 크게 웃돌았다. 전직 관료와 대학교수, 로펌, 회계펌 인력이 이사회에 다수 진입했지만 산업계 다양한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응답자 상당수가 현 보수 수준에 불만족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문적 인사를 집중 기용하고 지금보다 더 높은 보수 수준을 채택해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61.9%, 13명)이 이사 책임 수준에 비해 보수가 낮다는 인식을 나타냈고 이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로 주식 지급 등 인센티브 강화 등을 내세웠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7.1%, 12명)이 연 7000만원 이하 보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다양성 가치를 기계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응답자는 별도 응답란을 통해 "다양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접근에는 한계와 부작용이 존재한다"면서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를 이사회에 포함시키는 식의 논리는 이사회 본질적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업권이 연이은 소비자보호 이슈에 따라 이 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집중 기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어 이 사외이사는 "특정 분야 전문성은 반드시 이사회 내부에서만 확보할 필요가 없고 자문위원회와 외부 컨설턴트, 내부 리스크 관리 조직 등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문성을 이사회 구성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조직 설계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외이사는 또 "이사회 다양성은 이사회 본질적 기능을 대체·약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도 첨언했다.
한편 theBoard는 이사회 운영 제도 관련 사외이사 인식 지형을 확인하기 위해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현직 사외이사 21명
대상으로 인식도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참여자는 최소 1개 이상 기업 이사회 활동 경험이 있는 사외이사로 한정했다. 참여자 성비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 15(71.4%):6(28.6%)이었다. 응답자의 61.9%(13명)가 학계 인사였고 법조계 28.6%(6명), 금융투자업계(19.0%, 4명), 비영리단체(14.3%, 3명) 등 순이었다.
조사 문항은 이사회 운영과 관련한 28개 주·객관식 질문으로 구성했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6년)에 대한 적합성과 사외이사 겸직 제한(최대 2곳) 등에 대한 인식을 물었고 안건 사전 자료 제공 수준과 검토 기간 소위원회 운영 실
효성 사외이사 선임 절차의 적정성, 지원 조직 및 교육 프로그램 수준 등도 함께 점검했다. 상법 개정 이후 개선이 필요한 제도적 과제 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주관식 문항)을 수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