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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신도리코에서 임대료 수익률까지 따졌다"

이재혁 상장협 전무, "사외이사는 출신보다 실질 활동이 중요"…독립성 기준도 재정립 필요

이돈섭 기자

2026-07-21 16:13:45

기업 이사회에 대한 시장 기대치는 크게 높아졌다. 이사회는 적법한 결론을 내리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회 멤버들은 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래처와 임직원, 주주 전체 등 기업 이해관계자 전체를 감안해 안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연이은 상법 개정으로 각 기업 사외이사 독립성 이슈가 시장 전면에 떠올랐지만 이와 더불어 이사회가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현재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서 20년 넘게 기업 경영 관련 제도를 다루며 신도리코와 인지컨트롤스 등 두 코스피 상장사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혁 사외이사(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사진)는 최근 더벨과 만나 '좋은 이사회는 의사결정 과정을 중시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사외이사 독립성은 출신과 이력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사 개개인의 이사회 활동을 면밀히 관찰해 평가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이 사외이사의 이사회 활동 중 신도리코에서 경영진보다 더 치열한 토론을 거치기도 했다. 신도리코는 일 부동산 투자를 두고 회계법인과 일본 감정평가 법인, 국내 법무법인 검토자료 등 70쪽이 넘는 자료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사외이사들은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은행 예금금리와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 임대료 상승폭은 얼마나 되는지 해당 지역 개발계획은 어떤지 따져묻고 직접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도 했다.

행동주의 펀드와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VIP자산운용은 2024년 신도리코 지분 5% 이상을 취득한 뒤 꾸준히 주식을 매입해 이달 초 7% 이상을 확보했다. VIP운용은 이 과정에서 이사회 미팅을 요청했고 사외이사들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 사외이사는 VIP운용 측을 직접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밸류업 방안을 경청했고 이후 직접 이 운용사를 찾아가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VIP 자산운용 입장에선 오너를 대신해 이사회, 사외이사를 통해 회사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제공]
VIP운용은 일본 부동산에 투입한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면 주주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재혁 사외이사는 이사회가 실제 검토했던 사업성 분석과 개발 계획, 투자 논리 등을 설명하며 성장 전략을 공유했다. 부동산 투자가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시장 의견도 회사에 전달해 우려를 해소할 방법도 모색했다. 주주와 회사가 같은 정보를 공유할수록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이 사외이사는 "이사에는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를 제고하는 것과 함께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경우 주주 이익까지 균형있게 고려해야 하는 책임이 요구된다"면서 "'결론이 옳았는가'보다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외이사의 역할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이끄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진 안건을 보류한 사례도 있다. 외부감사인을 새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 회계펌이 가격을 낮춘 수정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감사 투입 시간을 함께 줄인 것이 문제가 됐다. 사외이사(감사위원)들은 비용 절감이 감사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해 당일 선임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후 해당 회계펌이 경쟁사 수준으로 감사 시간을 보완한 제안서를 제출한 뒤에야 논의가 재개됐다.

의사결정 과정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사외이사는 이사회 기록을 체계화하는 작업도 주도했다. '해당 안건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식의 의사록이라면 이사회가 어떤 논의를 어떻게 거쳤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화상회의는 녹화하고 대면회의는 녹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지컨트롤스 이사회에서도 투자 안건의 경우 법무법인과 감정평가법인 의견 자료 등을 첨부해 판단 근거를 체계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 사외이사가 20년 넘게 적을 두고 있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코스피 상장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상장사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과 세제 개편 등에 대해 회사 권익을 대변하고 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데 주력한다. 각종 법률과 제도 등에 밝은 이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합류한 것을 긍정 평가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협의회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독립성 이슈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사외이사는 '이사 개개인의 독립성은 실제 활동 내역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사외이사 개개인의 출신이나 경력만으로 통해 그가 이사회 활동에 필요한 독립성을 충분히 확보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 사외이사가 이사회 합류 이후 논의 절차 투명성 강화 절차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탠 것처럼 이사 개개인이 기업 거버넌스 개선 과정에서 실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사회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결과에 도달하는지 상세히 지켜보는 작업은 굉장히 중요하다. 서로 다른 이사회가 같은 내용의 안건을 결의했더라도 안건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판단한 것과 별다른 검토 없이 단순 지지한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회사가 이사회 심의에 필요한 정보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이사회는 회사의 성장 방향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사의 책임만 계속 강조하는 것도 곤란한다는 입장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업 이사회 활동을 부담스럽게 느끼면 오히려 잠재적 후보군이 좁아질 수 있다. 이 사외이사는 "이사회 활동에 대한 책임은 커졌지만 역할과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업에 책임만 부과하기보다 후보군을 발굴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