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당수 상장사들이 이사회 실질적 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역할이 중요해지자 이사회에 실질적 권한과 함께 그에 걸맞는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함께 추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GS건설의 '사실상 사외이사 단임제'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국내 상장사 중 사외이사 연임이 없다시피 한 기업으로는
GS건설이 대표적이다. 2001년 허창수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지난해 9월 말까지 25년여 간
GS건설 이사회에는 총 37명의 전·현직 사외이사가 적을 뒀는데 이중 연임에 성공한 이는 6명(13.5%)에 불과했다. 이 중에는 후임 인사를 구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이사회에 남은 이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연임 이력을 가진 사외이사 수는 더 적어질 수 있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이호영 사외이사의 경우에도 본래 3년의 임기를 채우고 작년 주총에서 사임할 예정이었지만 이 사외이사 후임 사외이사 후보가 갑자기 이사회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불가피하게 재선임 후보로 선임됐다는 전언이다. 현재
GS건설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외이사 4명 중 3명(75%)이 20일 현재 임기 만 3년을 꽉 못채우고 있다.
GS건설 정관이 정하고 있는 이사의 임기는 최대 3년이다. 정확히는 '취임 후 3년 내 최종 결산기에 관한 정기주총 종결시'로 정하고 있다. 재선임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문구는 정관 상 기재돼 있지 않다.
GS건설이 허 회장 일가 지배력 영향 아래 있고 최대주주인 허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이사회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너가 사실상 사외이사 단임제 기조를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GS건설의 한 전직 사외이사는 "이사회에는 매번 아파트 건설과 같은 투자 내용이 수시 보고 안건으로 올라오는데 의장(허 회장)이 사외이사 전원에 의견을 묻고 경영진으로 하여금 그 의견을 반영케 한 다음 차기 이사회에서 보고케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
GS건설은 오너십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기업인데 지금까지 거버넌스에 이렇다 할 이슈가 발생하지 않았던 건 이사회가 잘 작동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GS건설 이사회가 완벽한 건 아니다.
GS건설 이사회를 거쳐간 인물 면면을 보면 허 회장과 고교 동창인 이가 포함돼 있는 등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허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점도 이사회
선진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지난해 상반기 말 theBoard 이사회 평가에서
GS건설은 255점 만점에 169점을 기록, 중위권에 랭크된 바 있다.
GS건설이 대부분 사외이사에게 연임을 허락하지 않은 걸 두고 다양한 평가가 오간다. 연임 여부를 신경 쓰지 않게 함으로써 소신 발언 기회를 만들었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 단임 임기제로는 기업 사정을 이해하고 이사회 활동을 전개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사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함께 추구해야 하지만 연임을 인정하는 현 제도 하에선 독립성 요소가 저해될 수 있어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 상법은 한 회사에 사외이사로 재직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6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계열회사를 포함해 총 9년을 넘길 수 없다. 장기 재직 사외이사의 독립성 훼손 우려를 이유로 2020년 상법 시행령이 개정된 결과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은 정관에 기재한 대로 처음 2~3년의 임기를 부여한 뒤 재선임을 통해 최대 임기를 소화케 하고 있는데 상법이 오히려 6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상당수 기업들이 사외이사들에게 상법 상 최대임기 6년을 보장하다시피 해 어떤 사외이사의 경우는 이를 이사로서의 권리로 받아들여 실제 연임이 되지 않았을 때 기업 측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이사회 멤버 간 불필요한 갈등을 제거하고 연임 결정에 따른 피로도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GS건설의 사외이사 단임제 사례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사외이사 임기를 3년 단임제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GS건설 이사회 운영은 더 관심을 받고 있다. 오너 기업인
GS건설과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지주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3년 단임제가 이사회의 전문성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3년 단임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GS건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가령 3년 단임제를 운영하면서 이사회서포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해 경영진과 이사회 간 정보 간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GS건설의 경우도 임원급 팀장을 필두로 이사회지원팀을 꾸리고 있으며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지원조직에는 지원팀뿐 아니라 재무팀과 컴플라이언스실, 내부회계관리팀 등이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단임제도 회사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운영이 까다로워지고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기업별로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명목적인 이사회 시스템 도입이나 소위원회 설치보다는 이사회 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내달 정기주총을 앞두고 있는
GS건설은 올 주총에서 최소 1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교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이사회에 합류한 최현숙 사외이사가 올 주총을 끝으로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최현숙 사외이사는 금융 분야 전문가로 기용된 만큼 이 분야 인사가 후임 후보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GS건설 사외이사진은 경영 전문가를 비롯해 금융, 법률, 건설산업 정책 전문가 등으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